뒤늦은 기록, BarCampSeou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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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6월 2일이었나 보다. :-) 그렇게 5개월이, 거의 반년이 지나가 버린 후의 기록을 남긴다. 어~엄청 '후'의 '기'록이지만... 좀 웃기긴 하네.

바캠프서울2 페이지 : BarCamp / BarCampSeoul2

BarCamp는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형식이 없는 컨퍼런스 입니다. 열린 환경에서 서로 배우고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심도 있는 토론과 상호 교류, 데모 등이 이루어 집니다. 모든 참가자는 하나의 자신의 생각을 발표함으로서 참여해야 합니다. (BarCamp의 규칙이나 진행 방식은 BarCampSeoul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십시오.)

그 날의 미투데이 : me2TAG barcamp

이런 유형의, 참가자가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오픈소스스러운 행사는, 내게는 이 바캠프가 처음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참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어떤 주제가 좋을까"하는 고민을 하던 중에, 정말 거짓말같이 리스트가 꽉 차버렸다. 에잉... 대기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준비부터 포기.

그러고는 점점 행사의 날이 다가오는데... 어라? 한 명, 두 명, 참가자 목록에서 불참을 알리는 사람이 생겨나더니, 결국엔 내 앞으로 단지 몇 명의 대기자가 더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혹시나 하고 그 바로 전날 밤에 목록을 다시 확인해본 결과! 어라? 이 일을 어째? 무슨 발표를 하지?

1) 미리 알고도 2) 등록도 못했다가 3) 준비도 못한 채 4) 갑자기 그렇게 또는 다행스럽게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떠올린 주제가 그 당시 관심이 몰려있던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와 가상화, 그리고 당시의 업무 분야였던 멀티미디어를 엮은 이야기, 바로 그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라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분야에 대한 소개. 그와 함께 잘 어울리는 친구 가상화, 그리고 그것을 말하기에 참 적당해 보였던 zimbra라는 솔루션의 소개를 급조된 프리젠테이션으로 "날치기" 발표해버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 부분은 참 아쉽다.

나의 부실한 발표자료 :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 가상화, 멀티미디어

어쨌든 그랬다.

음... 어쨌든 허둥 허둥 토요일이었지만 회사에 들러 명함도 좀 챙기고 (얼마 뿌리진 못했다) 그렇게 행사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뱅뱅사거리 근처의 다음 사무실. 살짝 헤메며 입구를 찾아 올라갔더니 벌써 많이들 모여 있더군. 서먹 서먹한 가운데 다행히 옛 직장 동료를 만나 그나마 그날의 첫 입술을 땔 수 있었다. (함께 만난 정진호님의 사진첩에서 한 장)


이렇게 이쁜 분을 통과하여,... 여차 저차 한 자리 차지하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그 날의 행사에 "참가"했었던 기억. "다음"이라는 회사의 느낌을 살짝이나마 볼 수 있었고, 조금 외로웠지만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저런 분야에서 한 획씩 긋고 있는 분들을 볼 수 있었고, ... 재미있었다.

어설픈 발표와 함께 어찌보면 핵심이랄 수 있는 뒷풀이에 참여하지 못해서 쪼매 아쉬웠던 이 행사에서 또 하나 아쉬웠던 부분은, 참여한 사람들의 소속 또는 발표의 주제가 대체로 "웹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듯이 앞으로의, 아니, 어쩌면 오늘날의 IT가 웹을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뭐라 꼭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내 느낌은 그랬다.


어젠가? 오랜만에 들린 KLDP에서 11주년 기념으로 KLDPConf 라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참가하면 또 즐거운 기억이 생길 것 같은데... 소식도 늦은데다 대기순도 한참 뒤라서... :-) 역시 포기모드다 :-)


'87년, 그 날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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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쏜 살 같이 흘러... 벌써 20년이 지나버렸군. 지구의 46억년 역사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개인에게는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 "반만년 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해방 후의 60여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놓고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런 20년이 지났다.

2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삼스럽게?

20년 전에 각인된 노래가 몇 곡 있다. 하나는, "그녀의 웃음소리 뿐", 이문세 형님의 노래. 그리고 나머지는... 누구의 노래가 아닌, 공중에 흩날리던... 그렇다. 배경음악. 바로 배경음악들이다.

그 해 봄, 보통은 조용함의 도시였던 나의 고향마저도 술렁였던, 그런 봄. 대체로 도시 가장자리의 조용한 주거 지역에 주로 살았었던 우리는 하필 그 무렵, 시내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은채 찾아온 '87년의 봄. 사건. 사건. 그리고 시위대, 최루가스. 큰 길과 꽤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인한 취루가스가 온 시내에 떠돌아 다니던 그랬던 봄.


이런 저런 사연을 뒤로 하고 그 해 늦여름 쯤,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좋아서 한 이사는 아니었기에 문세형님의 노래, 특히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하는 후렴구는 가슴을 후비며 다가왔다. 그렇게 떠나온 곳이 기차역 옆 개발중인 주택가의 한 쪽. 기차 소리도 운치있고...


그리고 가을, 겨울, 대선. 내 인생 최초의 직선제 대선이 그 해 겨울에 치뤄졌다. 물론 중학생에게 투표권은 없었다. :-) 5공화국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드디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던 그 대선.

한참 선거전이 치뤄지던 그 때, 각 후보들은 전국을 돌며 "순회 공연"에 들어갔다. 공연? 실제로 그랬다. 후보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에 앞서 연설보다 배는 긴 시간동안 각종 공연이 이어졌다. 연설을 들어주기 위해 동원된 인원들을 위한 것일까? 어디서 나왔는지 몰려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와 공연의 크기가 그 후보의 세(지지율이라기 보다는 동원력이랄까?)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중학생이 뭘 그렇게 아는척 하냐고? 바로 그 공연이 우리 집 옆의 "역전앞 광장"에서 열렸기 때문. 그 해, 재미있는 곳에 살았다. :-)

YS의 공연이 있던 날, 어김없이 어린 호기심은 "역전앞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80년 광주"의 사진을 접한 것. 백인의 사진도, 흑인의 사진도, 그렇다고 동물의 사진도 아니었다. 또렸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얼굴 또는... (이런 표현 죄송합니다만) 턱쪼가리. 그 날의 충격과 함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노래가 생겼는데, 그것이 YS 유세 지원을 위한 노래.

우리가 그대와 함께 있음에, 그대가 우리와 함께 있음에,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더 떠들석했던 (세를 떨쳤던) 노후보의 유세 지원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만은... 아마도 그 사진이 세겨진 바로 옆에 사진의 배경음악으로 세겨져 있는 듯 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살짝 떨린다.)

결국,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서인지 어째서인지, 여당의 후보가 당선이 되었었지. 그런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변. 야권 후보였던 YS와 JP가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여당에 합류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군부 종식, 독재 타도를 외치며 저 인간은 아니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


후... 철썩 같이 믿고만 있었던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가 이런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어렸던 그 시절이... 벌써 20년 전의 일로 멀어져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가보다.

많이 변했다. 좋아진 것도 많고 여전한 것도 많고... 또 단지 바뀌기만 한 것도 있고...

그렇게 흘러 간다.


한국일보 : 대학생 10명 중 6명 "6·10항쟁 잘 모릅니다"

한국일보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4개 대학 학보사와 함께 6월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이들 대학 학생 1,08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1%만이 6월 항쟁에 대해 ‘알고 있다’(잘 알고 있다 7.5%, 대략 알고 있다 36.6%)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 17,18일 이틀 동안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2.9%, 신뢰구간은 95%다. 고(故)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군사독재 철폐,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전국민적 저항, 대통령 직 선제와 헌법 개정 쟁취 투쟁 등 1987년 6월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격렬했고 그 중심에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2007년 대학생들은 6월 항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월 항쟁이 1987년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대학생은 10명 3명 뿐이었다. 10명 중 6명 가까이는 들어 본 정도(46.2%)이거나 들어본 적도 없다(9.7%)고 답했다.

한국일보 : 서울대·연대 "그날을 기억하자"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 1987년 6ㆍ10 민주항쟁 당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웠던 상아탑이 항쟁 20주년을 맞아 “그날을 기억하자”며 망각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6ㆍ10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故) 박종철, 이한열씨의 모교인 서울대와 연세대가 앞장섰다.


엘림넷 대 하이온넷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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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건인데, 이번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오픈소스, 특히 GPL 라이센스와 관련되어 국내에서 화재가 된 첫번째 사건이 아닌가 싶은데, 사건으로 소란스러울 때 소식만 접하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판결이 난 모양인데,

판결문 - GNU 프로젝트 -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
ETUND는 비록 공개된 소프트웨어인 VTUND를 기반으로 개발된 것이라 하더라도 엘림넷에 의하여 중요한 기능이 개량 내지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비밀로 유지, 관리되고 있는 기술상의 정보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아니한 것임이 분명하고,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독립된 경제적 가치 또한 충분히 인정된다 할 것이며(피고인 한oo 스스로도 검찰에서 ETUND 중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된 부분은 엘림넷의 소유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박oo도 검찰에서 엘림넷의 기술을 이용한 것이 개발기간을 2개월 정도 단축한 효과는 있다고 진술하였음), 이른바 오픈소스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의 GPL 라이센스 규칙이 이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법적 구속력이 있다 할 수 없으므로, 결국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사상이 다르거나 경직되어 있는, 또는 의미를 읽지 못하는 판사가 그런 결정을 할 수도 있겠다. 꼬우면 내가 판사를 해야하는데, 그럴 능력은 안되니... 어쨌든 하이온넷의 참패.

한가지 궁금한 것은 시대의 변화, 파라다임의 변화 등에 대하여 판사 아저씨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또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학습 또는 지속적인 머리 굴림, 머리 맞굴림 , 고정관념과의 싸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머리속을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는 선입견과의 싸움 등을 위한 장치나 토론의 장, 정보 교환의 장 같은 것은 있겠지? 그렇다면 언젠가는 변해가겠지.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라는 단체로 하여금 법원의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엄벌에 처하여야 마땅함.
그런데, 판결문 뒷부분의 이 부분이 참... 당황스럽다. 법원의 권의주의랄까? VTUND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최소한의 그 부분(자신이 소유한 저작권)에 대하여 대응하는 것이 꽤나 못마땅했나보다. :-)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벌써 몇년이 지났고 이제... 세상도 많이 변했음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엘림넷의 한 직원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좀 난처할 수 있겠으나 회사의 오픈소스에 대한 마음가짐이랄까? 정책 등에 대하여 물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회사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오픈소스에 대하여 인정", "오픈소스의 위력(필요성이랄까? 또는 이미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랄까?)을 절감", "오픈소스와 윈윈 할 마음가짐 있음" 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했다는게 아니라 내가 받아들인 느낌이 그렇다.)

(자존을 꺾으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기업이 살아있는 사람, 기업이다.

공개소프트웨어, 그리고 관리비용 (Web Server Software and Mal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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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윈도가 관리비용이 싸기 때문에 회사들이 리눅스를 피하고 윈도 서버로 전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윈도가 관리하기 더 편하다고 주장했다. :-)

그 사람이 양쪽 모두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길게 이야기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정황과 필요성을 떠나서 그런 주장에 대하여 정량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내가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기사를 읽으면서 말이다.

Google Online Security Blog: Web Server Software and Malware
The figure on the left shows the distribution of all Apache, IIS, and nginx webservers by country. Apache has the largest share, even though there is noticeable variation between countries. The figure on the right shows the distribution, by country, of webserver software of servers either distributing malware or hosting browser exploits. It is very interesting to see that in China and South Korea, a malicious server is much more likely to be running IIS than Apache.

We suspect that the causes for IIS featuring more prominently in these countries could be due to a combination of factors: first, automatic updates have not been enabled due to software piracy (piracy statistics from NationMaster, and BSA), and second, some security patches are not available for pirated copies of Microsoft operating systems. For instance the patch for a commonly seen ADODB.Stream exploit is not available to pirated copies of Windows operating systems.
말인 즉, MS의 IIS와 오픈소스 제품인 Apache 의 웹서버 시장 점유율을 보면 국가에 따라서 주목할만한 차이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보안 취약성의 분포를 보면 중국과 남한의 결과가 재미있다는... :-( 이 두 나라에서는 아파치 서버에 비하여 IIS를 사용하는 서버의 취약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보안 패치 적용이 어려운 해적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리송. 그래서 관리비용이 싼 것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일반 사용자는 몰라도 회사에서 서버로 활용하는 기계에 대하여 이런 결과를 이끌어낼 만큼 해적판의 사용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환상인가? :-) 그것 보다는,
윈도와 그 위에서 동작하는 상용 프로그램은 튼튼해. 돈을 받은 회사가 보장하고 있으므로 안전하고 관리하기도 편하다구. 관리도 어렵고 문제 생기면 하소연할 곳도 없는 리눅스나 오픈소스 따위와는 다르다구.
라는, 안일한 고정관념의 부산물이 아닐까?

백화점에 들어가려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 (SEK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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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K 2007리눅스월드 코리아 행사와 함께 6월 20일부터 4일간 코엑스에서 열린다. 그런데, SEK 페이지에 가서 사전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참가규정"이라는, 회원약관 비스무리한 것의 동의를 구하는 페이지가 뜨고, 동의하고 넘어갔더니 이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란다.

도데체 뭘까? 내가 SEK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미술관 가면서 주민번호 적고 들어가야 하는 꼴... 아니, 백화점에 쇼핑가면서 주민번호 적고 들어가라는 꼴인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K 2007 사전등록 페이지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설명 조차 없으므로 무슨 의도로 이런 절차를 만들어 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백화점에 주민등록증 제시해가며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등록하지 않았다.

널린게 주민번호고 시답잖은 어학교제사에서 까지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세상에 그깟 주민번호 알려줘버리고 내가 원하는 정보 얻어가면 그만. 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싫은 건 싫은 거고 동의 할 수 없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다. 물론, 대다수는 그냥 적어낼 터이니 나만 손해보는 결과일 수도 있고 또한 이런 사람이 있는지 SEK 측에서 알 수도 없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