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관한 글 113건

  1. 2007.11.13 "Gibson gets official with the self-tuning Robot Guitar"
  2. 2007.11.13 Androidology, 구글의 또는 구글에 의한 모바일 플랫폼.
  3. 2007.11.12 Ubuntu 7.10 에서 프레임버퍼 콘솔 사용하기 3
  4. 2007.11.07 "밖에서는 휴대 전화, 안에서는 인터넷 전화로" 란다.
  5. 2007.11.07 TV에 로그온을 해야 한다면?
  6. 2007.11.06 뒤늦은 기록, BarCampSeoul2
  7. 2007.06.07 '87년, 그 날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
  8. 2007.06.07 엘림넷 대 하이온넷 사건 1
  9. 2007.06.07 공개소프트웨어, 그리고 관리비용 (Web Server Software and Malware)
  10. 2007.06.07 백화점에 들어가려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 (SEK 2007)

"Gibson gets official with the self-tuning Robot 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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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이런 기타가 나오다니.


비디오를 보면서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는 생각, 기술의 적용 범위가 많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감각의 영역에 까지 파고드는 기술의 그림자"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갖고 싶다! 레스폴!

Androidology, 구글의 또는 구글에 의한 모바일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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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Google)이 또 하나의 MS라는 둥 이런 저런 소리도 많이 듣고 있지만 그래도 차별화되는 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인 것 같다.

얼마 전 "안드로이드(Android)"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플랫폼을 하나 발표했다. 그리고 오늘자 뉴스를 보니까, 구글 코드에 자리잡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그 첫번째 릴리즈가 공개되었나보다.

http://code.google.com/android/

아래 비디오들은 안드로이드의 아키텍쳐, 어플리케이션 생명주기, API 등에 대한 세 편짜리 짧은 소개영상이다.

Architecture Overview


Application Lifecycle


APIs



확~ 끌리는데... 이 삼십년 묵은 게으름은 정말...

Ubuntu 7.10 에서 프레임버퍼 콘솔 사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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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우분투(Ubuntu)"라는 이름의 배포본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럭저럭 맘에 든다. (라이브 CD로부터 ) 설치할 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판박이를 만든다는 것이 일단 첫번째 불만이었고 그 외에는 그리 흠잡을 곳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사용하기 편한 것은 이 배포본의 특성에 의한 부분도 있겠지만 한편 그만큼 리눅스 운영체계가 일반 데스크탑 사용자가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발전한 까닭이 클 것이다.)

프레임버퍼 기반의 시험 공간으로 버추얼박스(VirtualBox)에 게스트로 최신의 7.10 버전을 설치해 보았다. 건드리기 귀찮은 내 시스템을 유지한 채 새 버전을 맛보는 목적도 있지만 본래의 목적은 역시 프레임버퍼용 시험환경 구성이다. 그런데, 부팅 명령행에 "vga=0x315" 항목을 추가하는 것 만으로는 이 녀석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혹시 버추얼박스의 제한? 확인된 내용은 우분투의 뭐랄까... 안전설계에 의한 것인 듯 하다. 다음의 단계에 의하여 설정을 마칠 수 있었다.

1) 부팅 옵션 변경 (일반적인 이야기)

한가지 특기할 부분은, 예전에는 각 메뉴 라인을 편집했었는데 이것이 grub 새 버전의 추가된 기능인지 아니면 우분투의 변종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메뉴 항목을 위한 기본값(defoptions)의 "한 줄" 지정이 가능하고 그것을 명령을 통하여 각각의 메뉴 항목에 적용하는 기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defoptions"라는 이름을 찾아 "vga=0x315"라는 값을 추가해줬다. (해상도 800x600의 24bit 모드)

$ sudo vi /boot/grub/menu.list
        add 'vga=0x315' to 'defoptions'
$ sudo update-grub

2) 모듈 설정과 제한 풀어주기

시스템이 initramfs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건 언제부터 적용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버전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이 것 이상의 가짜 파일시스템을 이용한 장난들이 재밌게 보이는데,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음과 같이 설정파일을 수정하여 필요한 모듈을 넣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듈로 되어있는지는 몰랐었네...)

$ sudo vi /etc/initramfs-tools/module
        add 'fbcon' and 'vesafb'

그러나 이 중 vesafb는 요주의 모듈 목록에 기본으로 들어있었다. 다음처럼, 설정파일을 편집하여 모듈 등록을 거부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 sudo vi /etc/modprobe.d/blacklist-framebuffer
        disable 'blacklist vesafb'

이제 initrd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 sudo update-initramfs -u

3) 다시 시작

$ sudo reboot

그런데 왠 일인지 이것으로는 모자람...

4) 부팅 스플래시 설정 바꾸기

이렇게 해놓으니 화면은 800x600으로 잡혀 올라오는데 부팅 스플래시와 진행막대가 엉뚱한 위치에 표시된다. 이전의 설정이 1024x768을 기준으로 되어있어서인데... 바로잡자.

$ sudo vi /etc/usplash.conf
        modify 'xres' and 'yres'

물론 램디스크를 다시 만들어줘야 하고, 다시 시작하면 부팅 화면도 깔끔하게 표시된다.

좀 복잡하다. 왜 복잡해졌나? 편의를 돕기 위한 이런 저런 유틸리티, 설정, 뭔가가 더해지다보니 건드려야 하는 부분도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일반 사용자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려면 그 만큼 속으로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공짜는 없다고나 할까?

리눅스 어렵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나보다.

"밖에서는 휴대 전화, 안에서는 인터넷 전화로"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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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가서 뱅글뱅글 손잡이 돌려서 교환에게 "누구네 집" 걸어달라고 부탁하고는 기다리고 않아있던 시절도 있었다. 동그라미 다이얼, 네모 버튼, 결국은 무선 전화기! 그러더니 삐삐에 헨드폰에 씨티폰까지, 통신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구나.

밖에서는 휴대 전화, 안에서는 인터넷 전화로

휴대전화와 인터넷전화(VoIP)를 자유롭게 연결하며 통화할 수 있도록 연동해주는 유무선통합(FMC: Fixed Mobile Convergence) 서비스가 다음달부터 상용화된다. FMC 폰을 이용하면 외부에서는 휴대 전화로, 인터넷이 연결된 내부에서는 인터넷전화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전화가 점점 특정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 기업들을 중심으로 퍼저가더니 근래에는 집전화를 대체하는 형태의 서비스들이 하나 둘씩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구나. "밖에서는 휴대전화, 안에서는 인터넷 전화" 오호라!

이거 정말 인터넷 전화사업 할 맛 안나네 :-)


TV에 로그온을 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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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는 내가 느끼고 보는 범위가 너무 작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깜짝깜짝 놀랄 만큼 변하는 세상의 중심에, 바로 여기에, 내가 서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아닐 지언정 최소한 "생활"은 되겠다.

ZDNet Korea...TV에 로그온을 해야 한다면?

TV를 켜는 것이 아니라 로그온을 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의 일부라면?

임베디드 분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맘에 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것이 삶의 가운데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환경, 기업 환경, 서버/메인프레임 환경 등에서 일하면서는 느끼지 못한 꼬옥 와 닿는 느낌. "꼭 그렇진 않았지만" 내가 고객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설명이 쉽지가 않군. 느낌이 오는가? "내가 니가 되고 니가 내가 되는" 그런...

전산 기술이 어느 틈엔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동안, 점차 생활 속으로 천천히, 그리고 매우 깊숙히 파고 들고 있다. "졸업하면 인터넷은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던 나는 집에서 월 1만 5천원 정도의 비용으로 자유롭게 보다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고 그 덕에 자꾸 "한개티비"인지 뭔지 하는 것을 보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나의 몇 개 안되는 구글 알리미 주제 중 하나가 IPTV이고 지난 얼마간 이런 서비스를 위한 단말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 지금의 일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TV의 개념은 좀 약화되었지만 TV 기능과 인터넷 영화 관람 기능을 포함한 화상전화 시스템인데, 이런 물건을 만들다보면 확실히 일반적인 IT분야에서 일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 그리고 보다 강렬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뭐냐면, 이런게 대충 만들어지면 이걸 쓰는 어떤 사람이, 이걸 쓰는 나의 친구가, 나의 가족이, 또는 내가 불편해지거든.

위의 링크를 따라 들어가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다. TV를 보기 위하여 로긴을 해야 하고(그렇다. IPTV 세상 이야기다. 모르긴 몰라도 얼마 가지 않아서 방송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TV를 제대로 보기 위하여" 제품을 업데이트 해야하고, 패치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되버린 세상에서의 암울한 하루를 표현해두었다. 정말 공감이 간다. 어떤 관점에서 그렇냐면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제품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의무. 책임. 달나라에 로케트를 쏘아 올리는, 사람과 침팬지의 97% 동질성을 확인하는,... 어떤 어렵고 획기적이고 대단한 뭔가가 아니더라도 그 작은 영향이 많은 사람, 혹은 온 국민에게 미치는 경우라면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그렇게 대단한 뭔가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결국, 엔지니어로써의 책임은 대단한 뭔가를 이뤘는가가 아니라, (그런 것은 사이언티스트에게 맡기고) 나와 이웃이 편안히, 안전하게,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임있게 일하는 엔지니어와 책임있게 사업하는 기업이 만들어낸 기계가 우리 삶에 파고 들어 오면... 위의 글 만큼 암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허... 오늘도 어께가 무겁군!



뒤늦은 기록, BarCampSeou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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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6월 2일이었나 보다. :-) 그렇게 5개월이, 거의 반년이 지나가 버린 후의 기록을 남긴다. 어~엄청 '후'의 '기'록이지만... 좀 웃기긴 하네.

바캠프서울2 페이지 : BarCamp / BarCampSeoul2

BarCamp는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형식이 없는 컨퍼런스 입니다. 열린 환경에서 서로 배우고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심도 있는 토론과 상호 교류, 데모 등이 이루어 집니다. 모든 참가자는 하나의 자신의 생각을 발표함으로서 참여해야 합니다. (BarCamp의 규칙이나 진행 방식은 BarCampSeoul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십시오.)

그 날의 미투데이 : me2TAG barcamp

이런 유형의, 참가자가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오픈소스스러운 행사는, 내게는 이 바캠프가 처음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참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어떤 주제가 좋을까"하는 고민을 하던 중에, 정말 거짓말같이 리스트가 꽉 차버렸다. 에잉... 대기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준비부터 포기.

그러고는 점점 행사의 날이 다가오는데... 어라? 한 명, 두 명, 참가자 목록에서 불참을 알리는 사람이 생겨나더니, 결국엔 내 앞으로 단지 몇 명의 대기자가 더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혹시나 하고 그 바로 전날 밤에 목록을 다시 확인해본 결과! 어라? 이 일을 어째? 무슨 발표를 하지?

1) 미리 알고도 2) 등록도 못했다가 3) 준비도 못한 채 4) 갑자기 그렇게 또는 다행스럽게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급하게 떠올린 주제가 그 당시 관심이 몰려있던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와 가상화, 그리고 당시의 업무 분야였던 멀티미디어를 엮은 이야기, 바로 그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라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도 않은 분야에 대한 소개. 그와 함께 잘 어울리는 친구 가상화, 그리고 그것을 말하기에 참 적당해 보였던 zimbra라는 솔루션의 소개를 급조된 프리젠테이션으로 "날치기" 발표해버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 부분은 참 아쉽다.

나의 부실한 발표자료 : 소프트웨어 어플라이언스, 가상화, 멀티미디어

어쨌든 그랬다.

음... 어쨌든 허둥 허둥 토요일이었지만 회사에 들러 명함도 좀 챙기고 (얼마 뿌리진 못했다) 그렇게 행사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뱅뱅사거리 근처의 다음 사무실. 살짝 헤메며 입구를 찾아 올라갔더니 벌써 많이들 모여 있더군. 서먹 서먹한 가운데 다행히 옛 직장 동료를 만나 그나마 그날의 첫 입술을 땔 수 있었다. (함께 만난 정진호님의 사진첩에서 한 장)


이렇게 이쁜 분을 통과하여,... 여차 저차 한 자리 차지하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그 날의 행사에 "참가"했었던 기억. "다음"이라는 회사의 느낌을 살짝이나마 볼 수 있었고, 조금 외로웠지만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었고, 이런 저런 분야에서 한 획씩 긋고 있는 분들을 볼 수 있었고, ... 재미있었다.

어설픈 발표와 함께 어찌보면 핵심이랄 수 있는 뒷풀이에 참여하지 못해서 쪼매 아쉬웠던 이 행사에서 또 하나 아쉬웠던 부분은, 참여한 사람들의 소속 또는 발표의 주제가 대체로 "웹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듯이 앞으로의, 아니, 어쩌면 오늘날의 IT가 웹을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뭐라 꼭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내 느낌은 그랬다.


어젠가? 오랜만에 들린 KLDP에서 11주년 기념으로 KLDPConf 라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참가하면 또 즐거운 기억이 생길 것 같은데... 소식도 늦은데다 대기순도 한참 뒤라서... :-) 역시 포기모드다 :-)


'87년, 그 날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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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쏜 살 같이 흘러... 벌써 20년이 지나버렸군. 지구의 46억년 역사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개인에게는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 "반만년 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해방 후의 60여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놓고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런 20년이 지났다.

2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삼스럽게?

20년 전에 각인된 노래가 몇 곡 있다. 하나는, "그녀의 웃음소리 뿐", 이문세 형님의 노래. 그리고 나머지는... 누구의 노래가 아닌, 공중에 흩날리던... 그렇다. 배경음악. 바로 배경음악들이다.

그 해 봄, 보통은 조용함의 도시였던 나의 고향마저도 술렁였던, 그런 봄. 대체로 도시 가장자리의 조용한 주거 지역에 주로 살았었던 우리는 하필 그 무렵, 시내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알리지도 않은채 찾아온 '87년의 봄. 사건. 사건. 그리고 시위대, 최루가스. 큰 길과 꽤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인한 취루가스가 온 시내에 떠돌아 다니던 그랬던 봄.


이런 저런 사연을 뒤로 하고 그 해 늦여름 쯤,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좋아서 한 이사는 아니었기에 문세형님의 노래, 특히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하는 후렴구는 가슴을 후비며 다가왔다. 그렇게 떠나온 곳이 기차역 옆 개발중인 주택가의 한 쪽. 기차 소리도 운치있고...


그리고 가을, 겨울, 대선. 내 인생 최초의 직선제 대선이 그 해 겨울에 치뤄졌다. 물론 중학생에게 투표권은 없었다. :-) 5공화국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드디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던 그 대선.

한참 선거전이 치뤄지던 그 때, 각 후보들은 전국을 돌며 "순회 공연"에 들어갔다. 공연? 실제로 그랬다. 후보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에 앞서 연설보다 배는 긴 시간동안 각종 공연이 이어졌다. 연설을 들어주기 위해 동원된 인원들을 위한 것일까? 어디서 나왔는지 몰려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와 공연의 크기가 그 후보의 세(지지율이라기 보다는 동원력이랄까?)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중학생이 뭘 그렇게 아는척 하냐고? 바로 그 공연이 우리 집 옆의 "역전앞 광장"에서 열렸기 때문. 그 해, 재미있는 곳에 살았다. :-)

YS의 공연이 있던 날, 어김없이 어린 호기심은 "역전앞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80년 광주"의 사진을 접한 것. 백인의 사진도, 흑인의 사진도, 그렇다고 동물의 사진도 아니었다. 또렸하게 알아볼 수 있었던 우리 민족의 얼굴 또는... (이런 표현 죄송합니다만) 턱쪼가리. 그 날의 충격과 함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노래가 생겼는데, 그것이 YS 유세 지원을 위한 노래.

우리가 그대와 함께 있음에, 그대가 우리와 함께 있음에,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더 떠들석했던 (세를 떨쳤던) 노후보의 유세 지원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노래만은... 아마도 그 사진이 세겨진 바로 옆에 사진의 배경음악으로 세겨져 있는 듯 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살짝 떨린다.)

결국,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서인지 어째서인지, 여당의 후보가 당선이 되었었지. 그런데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변. 야권 후보였던 YS와 JP가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여당에 합류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군부 종식, 독재 타도를 외치며 저 인간은 아니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


후... 철썩 같이 믿고만 있었던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가 이런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어렸던 그 시절이... 벌써 20년 전의 일로 멀어져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가보다.

많이 변했다. 좋아진 것도 많고 여전한 것도 많고... 또 단지 바뀌기만 한 것도 있고...

그렇게 흘러 간다.


한국일보 : 대학생 10명 중 6명 "6·10항쟁 잘 모릅니다"

한국일보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4개 대학 학보사와 함께 6월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이들 대학 학생 1,08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1%만이 6월 항쟁에 대해 ‘알고 있다’(잘 알고 있다 7.5%, 대략 알고 있다 36.6%)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 17,18일 이틀 동안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2.9%, 신뢰구간은 95%다. 고(故)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군사독재 철폐,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전국민적 저항, 대통령 직 선제와 헌법 개정 쟁취 투쟁 등 1987년 6월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격렬했고 그 중심에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2007년 대학생들은 6월 항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월 항쟁이 1987년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대학생은 10명 3명 뿐이었다. 10명 중 6명 가까이는 들어 본 정도(46.2%)이거나 들어본 적도 없다(9.7%)고 답했다.

한국일보 : 서울대·연대 "그날을 기억하자"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 -밀란 쿤데라 1987년 6ㆍ10 민주항쟁 당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웠던 상아탑이 항쟁 20주년을 맞아 “그날을 기억하자”며 망각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6ㆍ10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故) 박종철, 이한열씨의 모교인 서울대와 연세대가 앞장섰다.


엘림넷 대 하이온넷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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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건인데, 이번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오픈소스, 특히 GPL 라이센스와 관련되어 국내에서 화재가 된 첫번째 사건이 아닌가 싶은데, 사건으로 소란스러울 때 소식만 접하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판결이 난 모양인데,

판결문 - GNU 프로젝트 -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
ETUND는 비록 공개된 소프트웨어인 VTUND를 기반으로 개발된 것이라 하더라도 엘림넷에 의하여 중요한 기능이 개량 내지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비밀로 유지, 관리되고 있는 기술상의 정보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아니한 것임이 분명하고,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독립된 경제적 가치 또한 충분히 인정된다 할 것이며(피고인 한oo 스스로도 검찰에서 ETUND 중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가된 부분은 엘림넷의 소유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박oo도 검찰에서 엘림넷의 기술을 이용한 것이 개발기간을 2개월 정도 단축한 효과는 있다고 진술하였음), 이른바 오픈소스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의 GPL 라이센스 규칙이 이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법적 구속력이 있다 할 수 없으므로, 결국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
사상이 다르거나 경직되어 있는, 또는 의미를 읽지 못하는 판사가 그런 결정을 할 수도 있겠다. 꼬우면 내가 판사를 해야하는데, 그럴 능력은 안되니... 어쨌든 하이온넷의 참패.

한가지 궁금한 것은 시대의 변화, 파라다임의 변화 등에 대하여 판사 아저씨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또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학습 또는 지속적인 머리 굴림, 머리 맞굴림 , 고정관념과의 싸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머리속을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는 선입견과의 싸움 등을 위한 장치나 토론의 장, 정보 교환의 장 같은 것은 있겠지? 그렇다면 언젠가는 변해가겠지.
자유소프트웨어재단이라는 단체로 하여금 법원의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엄벌에 처하여야 마땅함.
그런데, 판결문 뒷부분의 이 부분이 참... 당황스럽다. 법원의 권의주의랄까? VTUND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최소한의 그 부분(자신이 소유한 저작권)에 대하여 대응하는 것이 꽤나 못마땅했나보다. :-)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벌써 몇년이 지났고 이제... 세상도 많이 변했음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엘림넷의 한 직원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좀 난처할 수 있겠으나 회사의 오픈소스에 대한 마음가짐이랄까? 정책 등에 대하여 물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회사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오픈소스에 대하여 인정", "오픈소스의 위력(필요성이랄까? 또는 이미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랄까?)을 절감", "오픈소스와 윈윈 할 마음가짐 있음" 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했다는게 아니라 내가 받아들인 느낌이 그렇다.)

(자존을 꺾으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기업이 살아있는 사람, 기업이다.

공개소프트웨어, 그리고 관리비용 (Web Server Software and Mal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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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윈도가 관리비용이 싸기 때문에 회사들이 리눅스를 피하고 윈도 서버로 전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윈도가 관리하기 더 편하다고 주장했다. :-)

그 사람이 양쪽 모두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뿐더러 길게 이야기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정황과 필요성을 떠나서 그런 주장에 대하여 정량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내가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기사를 읽으면서 말이다.

Google Online Security Blog: Web Server Software and Malware
The figure on the left shows the distribution of all Apache, IIS, and nginx webservers by country. Apache has the largest share, even though there is noticeable variation between countries. The figure on the right shows the distribution, by country, of webserver software of servers either distributing malware or hosting browser exploits. It is very interesting to see that in China and South Korea, a malicious server is much more likely to be running IIS than Apache.

We suspect that the causes for IIS featuring more prominently in these countries could be due to a combination of factors: first, automatic updates have not been enabled due to software piracy (piracy statistics from NationMaster, and BSA), and second, some security patches are not available for pirated copies of Microsoft operating systems. For instance the patch for a commonly seen ADODB.Stream exploit is not available to pirated copies of Windows operating systems.
말인 즉, MS의 IIS와 오픈소스 제품인 Apache 의 웹서버 시장 점유율을 보면 국가에 따라서 주목할만한 차이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보안 취약성의 분포를 보면 중국과 남한의 결과가 재미있다는... :-( 이 두 나라에서는 아파치 서버에 비하여 IIS를 사용하는 서버의 취약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보안 패치 적용이 어려운 해적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리송. 그래서 관리비용이 싼 것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일반 사용자는 몰라도 회사에서 서버로 활용하는 기계에 대하여 이런 결과를 이끌어낼 만큼 해적판의 사용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환상인가? :-) 그것 보다는,
윈도와 그 위에서 동작하는 상용 프로그램은 튼튼해. 돈을 받은 회사가 보장하고 있으므로 안전하고 관리하기도 편하다구. 관리도 어렵고 문제 생기면 하소연할 곳도 없는 리눅스나 오픈소스 따위와는 다르다구.
라는, 안일한 고정관념의 부산물이 아닐까?

백화점에 들어가려면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 (SEK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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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K 2007리눅스월드 코리아 행사와 함께 6월 20일부터 4일간 코엑스에서 열린다. 그런데, SEK 페이지에 가서 사전등록을 하려고 했더니 "참가규정"이라는, 회원약관 비스무리한 것의 동의를 구하는 페이지가 뜨고, 동의하고 넘어갔더니 이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란다.

도데체 뭘까? 내가 SEK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미술관 가면서 주민번호 적고 들어가야 하는 꼴... 아니, 백화점에 쇼핑가면서 주민번호 적고 들어가라는 꼴인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K 2007 사전등록 페이지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설명 조차 없으므로 무슨 의도로 이런 절차를 만들어 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백화점에 주민등록증 제시해가며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등록하지 않았다.

널린게 주민번호고 시답잖은 어학교제사에서 까지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세상에 그깟 주민번호 알려줘버리고 내가 원하는 정보 얻어가면 그만. 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싫은 건 싫은 거고 동의 할 수 없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다. 물론, 대다수는 그냥 적어낼 터이니 나만 손해보는 결과일 수도 있고 또한 이런 사람이 있는지 SEK 측에서 알 수도 없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