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l, Thomas, Paul, 알로크, 아델, Santhosh, Mats, Dimitris, Toshitaka, Nobuhiro, Changhua,... 이상은 업무상 함께 일했거나, 만났거나, 명함을 받은 외국인들의 명함에 기록된 이름 들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알파벳을 사용하는 나라든 아니든, 모두 자신들의 고유한 이름을 단지 영문자/알파벳을 이용하여 적어두었을 지언정, 별도의 미국식 이름을 가진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활동을 위하여 한글로 발음한 이름을 적어둔 경우도 있었다.)

블라디슬라바, 다라, 구잘, 사유리, 브로닌, 애나벨, 도미니크,.. 이상은 옆에 놓인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미녀들의 수다"라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외국인 출연자들의 이름을 보이는대로 적어본 것이다. 프로그램 목적상 외국인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본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음하기 힘든 경우는 있어도, 그런 이름들이 거북하지는 않다. 적어도 난 그렇다.)

전에 근무했던 그다지 "글로벌" 하지도 않았던 회사의 사원들은 대체로 미국식 또는 영어식(?)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사내 유행이었을까?) 꽤 오래 전에 선배 따라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해본 적이 있는데, 첫 시간에 강사가 "미국식 이름이 뭐냐, 없으면 하나 만들어라." 그랬었다. 요즘 영어 유치원, 영어 학원을 다니는 어린이들 역시 대체로 그런 식으로, 강사들의 말 한마디에 의하여, 부모님이 심사숙고하여 지어준 이름 대신 대충 떠올린 미국식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현상에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는 듯 했다.)

왜 우리에게 또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미국식 이름, 아니, 가명(*)이 필요한가? 글쎄, 내가 들었던 설명은 국제화(또는 요즘 표현으로는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과 교류하고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에 거북하지 않은 가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리있는 얘기다. 브랜드라는 관점에서, "입에 담기 쉬운" 이름이 자신을 알리는데 보다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쉽게 부르거나 외울 수 있고 자주 불리어지면 그만큼 쉽게 인식되거나 기억될 수 있다. 연예인들이 이런 의미에서 가명을 사용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이미지를 담기도 하고, 흔하고 평범한 이름 대신 독특하고 세련된(?)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식 이름, 미국인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가명은 역시 가명일 뿐이다. "국제적 활동을 위하여 몇몇 사업 상대를 상대로 사용하는 미국식 가명"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연예인의 가명"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으로 그 이름으로 뭐랄까 법적 계약서를 쓸 수도 없고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도 없다. (계약서에 싸인하기 전에 사업 상대가 물어올지도 모른다. "저스틴, 그런데 길동 홍이 누구죠?")

음... 아까 그 회사에 근무할 때, 사무실에 찾아온 손님이 내게 "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물어왔지만 난 답해줄 수 없었다. "에**이 누가야?"...  "김**"이라고 알고 있던 그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또는 그것이 전화연락이었다면 아마 난 그 손님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름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에**" 이고 누구에게는 "김**"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었던 얘기 줄이면, 나는 이런 사실상 국제적이지 않고, 법적으로 의미없고, 고유성을 갖지 않은 미국식 가명 짓기를 싫어하고 반대한다.

글로벌 감각이 떨어져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인 것은 지금껏 업무상 만났던 모든 외국인 들 역시 이 부분에서 만큼은 나만큼 글로벌 감각이 떨어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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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증에 기록되는 이름도 아니고 계약서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름도 아니니 확실히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